VMSPACE는 국내 최고의 건축 포털 매거진입니다. 회원가입을 하시면 보다 편리하게 정보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ogin 회원가입
Naver 로그인


고시원, 대안적 주거의 가능성: 선랩건축사사무소

사진
조재무(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선랩건축사사무소
진행
방유경 기자

「SPACE(공간)」 2025년 4월호 (통권 689호) 

 

쉐어어스 신림(4호점, 2019) 전경​

 

선랩건축사사무소(이하 선랩)의 현승헌은 대학 시절 경험한 집짓기 봉사 활동, 실무 초년생 시절부터 참여한 집수리 봉사 활동을 바탕으로 2013년 선랩을 설립했다. 그는 사회에서 건축가를 필요로 하는 일에 뛰어드는 것을 자신의 사명이라 여기며, 최소한의 비용으로 열악한 고시원을 공유형 생활주택으로 리모델링하는 민관 협력 활동을 10년 넘게 지속하고 있다. 한 평짜리 고시원을 타입별 유닛으로 구획하고 다양한 공유 공간으로 매개해 삶의 터전으로 전환하는 선랩의 실험 뒤에는 면밀한 조사와 연구가 바탕에 깔려 있다. 여기에 고시원과 고시촌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발로 뛴 연구자 조재혁이 힘을 보탰다. 두 사람을 만나 대안적 주거 형태이자 도시재생의 거점으로 고시원이 지닌 가능성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승헌 선랩건축사사무소 대표, 조재혁 선랩건축사사무소 파트너 × 방유경 기자 

 

쉐어어스 에벤에셀(1호점, 2015) 입구​ ©Kim Yongseok 

 

고시원과 고시촌


방유경(방): 먼저 지난해 젊은건축가상 수상을 축하한다. 이번 수상이 고시원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현승헌(현): 축하 감사드린다. 우리의 작업이 건축계 안에서 ‘작품’으로 평가받기 어렵다고 생각해 큰 기대 없이 지원했는데 결과를 듣고 우리도 놀랐다. (웃음)

 

방: 그간의 활동을 살펴보니 건축계 안에서 오히려 조명을 받지 못했을 뿐이지 사회적기업이나, 대안적 주거 등 사회문제에 혜안을 제시한 실천적 사례로 공공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소개되기도 했더라. 

현: ‘관악동작 해뜨는집’ 집수리 자원봉사에서 시작한 일이 서울시 정책과 연계된 시범사업으로 발전하기까지 여러 중간 과정들이 있었다. 고시원 리모델링 결과물이 하나둘 완성되면서 관심을 가진 매체에 간간이 소개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젊은건축가상 수상이 건축가로서 일련의 과정을 정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우리 작업과 활동 취지에 공감해준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다.

 

방: 선랩이 지금의 결과를 내기까지 어떤 과정을 밟았는지 간략한 소개를 부탁한다.

현: 나는 제주도 출신이다. 대학 진학을 계기로 상경해 고시원, 하숙집, 자취방, 원룸 등 다양한 임시 주거를 옮겨 다닌 유목민 중 한 사람이었다. 대학 때 소위 말하는 ‘개념(concept)’을 세우고 이를 구체화하는 설계 교육을 받았지만, 내가 사는 곳도 마음대로 선택하거나 바꾸지 못하면서 ‘내’가 중심이 되는 건축이 어울리지 않는 옷처럼 다가왔다. 그러다 학부 때 철암·인제 집짓기 자원봉사에 참여하면서 ‘사회가 필요로 하는’ 건축에 눈을 돌리게 됐다. 설계사무소에 취업한 이후에도 주말마다 집수리 자원봉사에 참여하며 내 건축 작업과 봉사 활동 사이에서 연결 지점을 고민했다. 그러던 중 2012년 서울시의 ‘사회적경제 아이디어 공모전’ 포스터를 보고, (집수리 활동과 회사 생활을 함께했던 친구 성철휘와 함께) 건축 전문가들이 접근하기 힘든 지역의 집수리나 리모델링 작업을 유형화하여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사업 제안서를 제출했다. 공모에 당선돼서 기뻤는데, 알고 보니 창업 프로그램의 사전 공모였다. 프로그램에 참여해 창업을 해야만 실질적인 지원과 교육, 컨설팅을 받을 수 있었던 거다. 한 달여를 고민한 끝에 친구와 같이 퇴사하고 만든 회사가 선랩(SUNLAB)이다. 우리가 하던 ‘해뜨는집’ 집수리 활동에 ‘연구소’라는 의미를 추가해 붙인 이름이었다.

 

고시원 층별 평면(위) 및 개실 현황도면(아래), 조재혁 제작​

 

 

방: 조재혁은 연구 파트를 맡고 있는데, 어떻게 선랩에 합류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조재혁(조): 학부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실무를 하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됐는데 내 연구 주제가 고시원, 고시촌이었다. 이를 탐구하는 건축가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을 방문해 무작정 현승헌을 찾아갔다. 안면을 튼 이후 꾸준히 관계를 유지하며 석사와 박사 논문을 쓰는 기간 동안 실태조사에 참여해 서울의 고시원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신림동, 영등포, 신촌, 종로, 동대문, 강남까지 고시원이 있는 곳은 다 찾아다녔다.

현: 선랩은 디자이너들이 조직한 회사인데, 시범사업에서 고시원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실제 공간을 조성하는 과제가 주어지다 보니 공간적으로도 함께 연구하면서 도움을 주고받았다. 유닛 구성이나 공유 공간 개발도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이후 고시원 리모델링 사례를 여럿 만들고 나니 2017년에는 서울시에서 발주한 고시원 실태조사 용역을 한국도시연구소와 함께 맡아 건축 부문 연구원으로 참여하게 됐다. 조재혁도 이 연구에 참여했는데, 박사논문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 정식으로 함께 하자고 제안해 3년 전부터 합류하게 됐다.

 

방: 한국도 아닌 일본에서 서울의 고시원을 연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연구의 주된 내용도 궁금하다.

조: 학부 졸업 후 건축 실무를 하다가 좀 다른 가능성을 찾고 싶어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 내가 주목한 것은 고시원 자체보다는 고시촌이었다. 개별 고시원의 물리적 속성보다는 고시원들이 밀집하면서 나타나는 특이점에 관심을 가졌다. 이런 현상을 객관적으로 보면 도시와 건축, 그 사이 영역에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예를 들어 고시원이 모여 있을 때 주변에 형성되는 시설들(학원, 세탁소, 편의점, 카페, 식당 등)을 보면 동네 자체가 집처럼 작동하더라. 사람들이 고시원에서 잠만 자고 독서실에서 같이 공부하다가 밥 먹으러 식당을 가고, 카페에 가서 공부하거나 친구를 만나는 생활 패턴이 고시촌 안에서 다 일어난다. 주거의 여러 기능실들이 동네 안에 분산되어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는 고시촌의 현상을 도시 주거의 가능성으로 치환할 수 있지 않을까 관심을 가지며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그런데 한국 사회가 가진 선입견이나 고정관념 때문인지, 주변에서 “연구해서 뭔가 밝혀진다고 한들 그게 어떤 의미가 있고, 누가 관심을 가질 수 있겠냐”며 반문하더라. 반면 일본에서는 내 연구 주제를 흥미롭게 받아들이며, 가능성이 있으니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다. 덕분에 연구비도 지원받아 일본에서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연구의 큰 축은 고시촌과 고시원의 기원과 변천이다. 즉 어떻게 만들어져서 고시원들이 어떻게 모이게 되었는지, 집단적으로 모인 장소에서는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주로 다뤘다. 고시원 이용자들의 생활 패턴, 라이프스타일에 따라서 고시촌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음을 발견하면서, 동네마다 문제에 대한 처방 역시 다르게 제안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현: 도시나 건축 연구자들을 만나 대화하다 보면, 대체로 “고시원은 없어져야 한다”는 기조로 이야기한다. 그런데 우리의 특이점은 그들과 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조재혁은 “고시원이 있어야 된다”는 쪽이고, 나는 “고시원을 바꿔야 한다”는 쪽이다. 특히 조재혁이 지역 조사와 관계 조사를 하며 거주자들에 대한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자신들의 힘든 상황을 언급해야 하기 때문에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런 자료를 바탕으로 패턴을 분석했다는 점에서 놀랐다.

조: 인터뷰는 일단 같이 먹는 것부터 시작해야 되더라. 고시촌 밥집에서 같이 식사하고, 시시껄렁한 얘기도 들어주고. 한 번 가서는 절대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가겠다고 정한 고시원이 생기면, 한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방문해 결국 사람들을 만났다. 

 

방: 인터뷰에서 흥미롭게 발견한 내용은 무엇이었나? 리모델링을 위해 고시원 거주자들의 니즈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됐는지?

조: 커뮤니티 시설의 중요성을 체감했다. 일반적으로 고시원이 폐쇄적으로 이용될 수밖에 없는 원인은 공유 공간이 부족하거나, 공유 공간이 있더라도 외부인들과 공유되지 않고 내부 입주자들끼리만 한정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구를 진행하다 보니 지역과 접점을 가지는 시설들이 고시원 밀집 지역마다 자연스레 만들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노량진 고시촌의 경우, 동네 가운데 있는 교회로 새벽마다 학생들이 몰려와 무료로 제공하는 아침식사로 끼니를 해결한다. 그런데 교회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했던 사람이 시험에 합격하고 나면 무료 배식을 유지할 수 있게 교회에 쌀을 보내주거나 기부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처럼 선순환이 이뤄지는 사례 외에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일용직 노동자들이 많은 영등포 고시촌의 경우, 사람들이 오후 2시만 되면 실내 스크린 경마장으로 모여든다. 겜블링을 하면서 돈을 탕진한 뒤 고시원으로 흩어진다.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을 잘 활용하면 고시촌 지역의 변화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계기였다. 쉐어어스(SHARE-US) 4호점의 공유 공간인 ‘신림다락’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원래 입주자들만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만들었다가 지속적인 공간 운영을 위해 카페로 전환했는데, 지역 주민들이 이용하는 열린 공간이 되면서 보다 활기를 띠게 되었다. 이런 의미 있는 데이터들을 축적해 고시원 리모델링에 적용될 수 있는 프로토타입에 반영하고자 한다.

현: 우리가 고시원 작업을 시작할 때는 폐쇄성이나 익명성과 같은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공유(sharing)라는 관점에서 접근했는데, 조재혁은 지역과의 관계 안에서 해석하더라. 이런 부분에서 상호 보완되고, 시너지가 나는 것 같다.

 

에벤에셀 고시원을 쉐어어스 에벤에셀로 바꾸며 공유 영역으로 평면을 분할했다. 1+1유닛은 2인이 개인실을 쓰며 욕실과 전실만 공유한다. 2유닛은 2인이 기숙사형으로 공동으로 생활하고, 3유닛은 3인이 개인실을 쓰며 거실을 공유하는 타입이다. 11명이 쓰던 고시원을 7명의 생활 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거성 고시원을 쉐어어스 거성(3호점, 2017)으로 바꾸며 동선 영역을 공유공간으로 전환했다. 27명이 쓰던 고시원 한 층을 2유닛과 3유닛을 조합해 10명이 함께 거주하는 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연구에서 실행으로, 쉐어어스의 실험


방: 쉐어어스는 선랩이 서울시와 함께 진행한 고시원 리모델링 프로젝트의 명칭이다. 현재 5호점까지 진행됐는데 어떤 과정을 거쳤나?

현: 2013년 선정된 아이디어 공모전의 제안서를 구체화해 2014년, 서울시 혁신형 사회적기업 공모사업인 ‘고시원 대안모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6개월간 연구 조사를 바탕으로, 공공에서 리모델링 비용 일부를 지원받고, 해당 고시원을 5년간 임대해 시범 운영하는 사업이었다. 공공사업이었기 때문에 수익보다는 고시원을 리모델링하는 프로토타입과 적절한 운영모델을 제안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1호점인 쉐어어스 에벤에셀(2015)은 인근 대학의 학사 일정과 고시촌의 시험 일정에 맞춰 6개월(3월 입주, 8월 퇴실/9월 입주, 2월 퇴실)을 주기로 운영됐다. 하지만 처음부터 회사의 수익을 고려하지 않고 주변 시세만 따져 개별실의 임대료를 낮게 책정하다 보니, 실제 투입되는 운영비를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공실률이 거의 없이 돌아갔지만, 유지 보수와 같은 사후 관리 비용을 생각 못한 점과 디자이너로 이뤄진 회사의 인력 구조를 고려해 팀 구성과 사업모델에 변화가 필요함을 느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시 주택정책과와 협력해 우리 사업을 ‘리모델링형 사회주택 시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제도화하게 됐다. 서울시의 청년 기숙사 조성 예산을 이쪽으로 틀어서 도입한 제도였는데, 이 트랙으로 2호점 쉐어어스 거성(2017)과 3호점 쉐어어스 청광(2017)이 순차적으로 오픈했다. 이 시점부터 공공과 완전히 합체된 ‘사회주택’이라는 제도의 틀 안에서 고시원 프로젝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시의 정책 기조와 맞물려 좋은 흐름을 탄 결과였다.

 

방: 1~3호점이 고시원을 일정 기간 임대하고 리모델링 비용 일부를 공공에서 지원받는 형태라면, 4호점 쉐어어스 신림(2019)은 생활문화지원센터와 결합되어 서울시에서 토지와 건물을 매입한 뒤 임대료 일부를 지원한 사례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공공 지원의 형태가 달라지게 된 계기가 있었나?

현: 민간에서 장기 임대를 할 수 있는 적절한 대상지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아 서울시에서 직접 매입해서 임대하는 방식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각각 임대 임차형과 매입형으로 구분되는데, 전자는 공공에서 공사비를 보조해주는 형태고, 후자는 임차료를 줄여주는 형태다. 전자의 방식으로 할 때는 신림동 고시촌 전수조사를 했던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대상지를 선정할 수 있었다. 조사와 연구가 선행됐기에 가능한 과정이었다.

 

방: 이런 조사와 연구, 운영 과정에서 생산된 기록이나 자료는 어떻게 활용되고 있나? 

현: 개념과 관련된 내용은 조재혁의 연구를 바탕으로 초기 자료를 구성했다. 누적된 운영 기록은 사업의 지속가능성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시설 유지 관리에 활용됐다. 관리 인원 수, 관리 항목, 관리 시간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해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목표였다. 시즌제 운영을 통해 입주와 퇴실을 하루 이틀에 몰아서 처리(입퇴실 확인 및 입금 작업)하는 것 역시, 디자이너들의 업무 시간을 지켜주기 위한 결과였다. 효용성을 찾아가는 이런 과정의 노하우가 비용으로 환원되더라. 크게 두 가지 변화를 겪었는데, 사용자와의 소통 측면에서는 모집 및 홍보 루트가 전단지 붙이고 전화로 응대하던 방식에서 SNS를 기반으로 FAQ를 공유하며 보다 체계적인 매뉴얼로 발전하게 됐다. 두 번째는 수도, 전기, 가스 등 공과금 관리다. 1/N로 부과하면서 과도하게 늘어난 공과금을 절약하기 위해, 2호점부터는 개별 개량 시스템을 만들어 고지서를 발행했다. 이 과정에서 생산된 데이터가 10년 가까이 쌓이자 에너지 사용량과 타입이나 면적에 따른 생활 패턴의 차이 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개인의 성향이나 편차를 대입해 다양한 그래프를 도출해내기도 했는데 이런 식의 조사 결과와 테스트 방식에 공공기관의 연구원들이 많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SUNLABARCHITECTS 

 

쉐어어스 에벤에셀(위)과 쉐어어스 거성(아래)의 입주자 공유 공간​ ©Kim Yongseok

 

방: 이런 정보들이 향후 정책이나 사업에 도입할 수 있는 초기 데이터로 활용될 수 있을 것 같다. 

현: 우리는 공유주택 개념으로 접근하지만, 제도권 특히 공공은 ‘비주택’이라는 카테고리에 관심이 많다. 고시원은 근린생활시설(이하 근생)이지만 사실상 주택으로 쓰인다. 이런 근생을 어떻게 개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주된 쟁점이다. 주택 정책에서 임대주택을 공급할 때 대개 도시 외곽의 택지 개발을 활용하지만, 도심의 기존 근생을 활용해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모델을 제안하는 거다. 고시원도 그중 하나였고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는 호텔을 리모델링하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유휴 공간을 이런 방식으로 개발하면서 일부는 도시재생 사업과도 맞물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건축가에서 임대사업자까지, 연구, 기획, 시행, 시공, 운영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야 했다.

 

방: 공공의 제도 안에서 건축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사업의 루트를 개척했다는 생각이 든다. 민간 영역과 공공 영역을 매개해 사업의 구조를 만들고 제도화하기까지 보이지 않는 고충이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현: 토지나 공사비, 운영비 등 자본이 없는 상황에서 무언가를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이 공공 영역이다 보니, 프로젝트를 공공사업으로 연결하는 데 도사가 되더라. (웃음) 이런 활동을 하면서 우리도 건축에서 잘 쓰이지 않는 투자 유치, IR과 같은 용어들에 익숙해지게 됐다. 사업의 구조, 사업 운영의 자금 흐름을 경험적으로 체득하면서 얻은 노하우라 할 수 있다. 리스크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은 사업 계획을 세우는 것조차 어렵지만, 우리는 경험을 바탕으로 비용에 대한 타당성을 직관적으로 판단하는 수준에 이른 것 같다.

 

방: 조재혁은 쉐어어스에 실제 거주했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사용자 입장에서 느낀 점은 무엇이었나?

조: 관리자와 거주자의 입장 차이를 경험했던 것 같다. 특히 입주자들 사이의 관계나 클레임 처리가 중요한 이슈였다.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있는데, 서로 불편한 사항을 관리자에 이야기하다 보니 감정노동자가 되어 가더라. 공유 공간에서 모여 집단적으로 활동하는 입주자와 그렇지 않은 입주자 사이의 불만을 잘 조율해야 하기 때문에 섬세한 운영 지침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현: 내부적으로는 입주자들의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사람을 통해 소통하는 프랑스의 가디언 제도를 ‘서포터즈’라는 이름으로 도입하기도 했다. 이들에게는 공과금 일부를 차감해주는 방식으로 보상을 주었다.

 

방: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는데, 선랩 안에서도 운영의 철학이 있을 것 같다.

현: 회사를 세우고 나서 의도적으로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건축이 공공성이 짙은 작업인 만큼 우리 사무소가 사회적 개념을 전제한다는 점을 증명하고 싶었다. 디자이너와 매니저 등으로 선랩을 거쳐간 친구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또 다른 사업에 참여하고 창업하는 것을 지켜보며 좋은 영향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Kim Yongseok 

 

쉐어어스 거성(3~4층 리모델링)에 조성한 3층 라운지(위)와 5유닛(아래)​ ©Kim Yongseok

 

도시 주거의 다양성을 위해

 

방: 조재혁은 논문을 쓰며 일본에 8년간 체류했는데, 당시 연구나 관점에 영향을 준 사례가 있었나?

조: 동일본대지진을 겪은 이후인 2013년에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일본 사회 안에서 모여 살면서 리스크를 함께 나누자는 붐이 일어났던 시기였다. 함께 사는 방식을 실험하는 셰어하우스와 관련 연구가 활발해졌는데, 나카 스튜디오(Naka Architects’ Studio)가 설계한 도쿄 메구로의 2인 가구를 위한 ‘식당이 있는 아파트’(2015)는 셰어하우스에 살던 집주인이 파트너가 생기면서 셰어하우스의 라이프스타일을 2인 거주 모델로 확장한 사례라 인상 깊었다. 1층에 커뮤니티 식당을, 2층과 3층에 2인이 생활할 수 있는 집을 두는 것을 기본 구조로 하되, ‘무엇을 공유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사람들과 만날 접점을 만들었다. 집 안이 아닌 복도 바깥쪽에 공용 세탁실을 두거나, 현관을 지날 때 다른 집들의 거실 앞을 지나가게 해 시각적으로 교감하게 하는 방식을 적용했더라. 공유주택의 다양성을 실험한 온 디자인(ON design partners)의 요코하마 아파트먼트(2009)도 흥미로웠다. 네 가구가 등을 맞댄 구조로 모여 있는데, 1층 공동 거실을 거쳐서 각 세대로 진입하게 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이런 좋은 작업들이 건축가의 개별 작품으로만 주목받고, 사회 저변에 다양한 방식으로 확대되지 못하는 부분에서는 모순과 한계를 느꼈다.

현: 도시 주거의 다양성을 넓히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1950년대 처음 등장한 ‘고시연구원’이 1970~1990년대에 ‘고시원’으로 불리며 수험생을 위한 학습과 숙박 공간으로 활용되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저소득층 1인 가구의 ‘단기 도시 거처’가 된 상황이 이를 증명한다. 고시원 거주자 중 20~30대 학생이나 사회 초년생 외에도 홀로 거주하는 고령 남성 비율이 높다는 사실도 주목할 지점이다. 생애주기에 따라 한번쯤 거쳐가야 하는 곳이 되었지만, 사회적 약자인 사용자가 집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임시 거처야말로 건축가가 개입해 질적 향상을 도모해야 하는 영역이라 생각한다.

조: 고시촌에서는 ‘불완전한’ 거주 형태인 고시원에서 충족되지 못하는 기능이 고시학원-고시원-독서실-고시뷔페(식당) 등이 연계되어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식으로 나름의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있다. 이를 지역에 적용해 특정 거주지의 코디네이터가 동네의 여러 시설을 활용하도록 테마별로 큐레이션하여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리적인 건물이나 복합 시설을 조성하지 않아도, 취향과 활동을 통해 사람들을 엮어줌으로써 도시재생, 지역 활성화와도 연결될 수 있다고 본다.

 

방: 고시원을 규정하는 새로운 언어로 ‘공유형 생활주택’을 제안했다. 공유주택, 사회주택이 혼용되고 있는데 어떤 차이가 있는가?

현: 사회주택은 법정 용어가 아니라 서울시 조례에서 출발한 제도적 개념이다. 일정 소득 분위 이하의 사람들에게 공급하는 공공주택을 뜻한다. 개인적으로는 ‘사회적’이란 표현 자체가 다른 가치들을 뭉갠다는 생각이 들어 잘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 저렴하게 만들어야 하니 공간의 질이나 완성도가 조금 부족해도 된다는 식의 사고가 은연중에 깔려 있지 않나. 한편으로는 우리 사업이 기존의 셰어하우스나 공유주택과 구분되는 제도적 용어로 정착되길 바라는 의도도 있었다. 셰어하우스는 사실상 물리적 대상이 아닌 운영 구조나 운영 방식을 지칭하는 표현이고, 공유주택은 공간 구조에 가까운 개념이기 때문이다. 「주택법」에 있는 ‘도시형 생활주택’을 차용해 ‘공유형 생활주택’이란 이름을 붙여, 2호점인 쉐어어스 거성 때부터 쓰기 시작했다.

조: 고시원은 「주택법」에 따르면 ‘준주택’에 속한다. 준주택에는 고시원, 노인복지시설, 오피스텔 세 가지 분류가 있는데, 준주택이란 이름도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명칭이다. 이런 회색지대에 가려진 대안적 주거에 대한 연구와 실험이 이루어져서 사회 전반으로 도시 주거를 다양화하는 논의가 확대되고 공론화되는 것이 중요하다. 긴 시간 연구자로서 외로움을 많이 느꼈는데, 무엇보다 학계와 건축가 등 전문가 집단 내부에서부터 언어를 정교화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야 할 것이다.

 

방: 집에 대한 개념과 패러다임의 전환 속도를 법과 행정, 제도가 따라가지 못해 생긴 시간차도 분명 있을 것이다. 고시원과 관련해 가장 앞서 있는 연구자이자 활동가이기도 한데, 현재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조: 2015년을 기준으로 서울시에 등록된 고시원 개수는 통계에 따르면 5,921개소였다. 당시 고시원의 평균 실수(30~40실)와 평균 공실률(20~30%)을 고려하면 대략 20만 개실 중 14~16만 개실, 즉 15만 명 정도가 실제 거주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를 같은 시기 서울 내 거주하는 1인가구 수(111만 5,744가구)와 비교하면 13.4%로 적지 않은 비율임을 알 수 있다. 2015년에 정점을 찍은 이후 고시원은 꾸준히 감소해 2024년 기준 5,074개소로 줄었다. 일각에서 고시원은 없어질 거라 전망하기도 하는데, 단순히 눈에 보이는 고시원이 사라지더라도 고시촌 안에서 일어났던 생활 패턴이나 생활상 자체는 다른 형태로 존속될 것이라 예상한다. 고시원의 변태나 진화 과정에 대한 후속 연구가 중요한데, 선랩이 지금까지 축적해온 아카이빙 자료와 활동 과정을 적절히 결합해 어떤 연구 결과로 보여줄지 고민하고 있다.

현: 고시원이란 대상 자체가 아니라 집을 대체하는 대안적 주거, 즉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영역을 파고드는 일이 사회에서 건축가를 필요로 하는 지점이 아닐까. 한편으론 임대주택의 ‘임대’라는 표현도 다른 언어로 전환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돈을 주고 빌리는 교환적 개념이 아니라, 사용자 입장에서 주거의 가치를 담은 표현으로 바꾸는 시도들이 집을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을 개선해나가는 유의미한 지점이 될 거라 생각한다.​ 

 

쉐어어스 신림의 신림다락으로 진입하는 외부 공간 모습 

 

쉐어어스 신림의 1층과 지하 1층을 연계해 만든 공유 공간 ‘신림다락’의 내부, 현재 카페로 사용되고 있다.  

월간 「SPACE(공간)」 689호(2025년 04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 VMSPAC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현승헌
현승헌은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태두건축, 2105건축을 거쳐 2013년 선랩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였다. 선랩건축사사무소는 건축의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사회적 기업을 활용한 다양한 방식의 건축 작업 수행을 목표로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았다.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서울시와 제주도 공공건축가로 활동하며 서울시 사회주택 시범사업 및 지역과 관련된 다양한 공간 리모델링 및 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24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했다.
조재혁
조재혁은 중앙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김영섭+건축문화, 엑토종합건축, 창조건축에서 건축 실무를 수련했다. 이후 성균관대학교 성균건축도시설계원(SKAi)에서 연구자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2013년부터 8년간 「도시거주의 관점에서 본 서울시내의 고시원의 변천과 이용실태에 관한 연구」로 니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22년부터 선랩건축사사무소의 파트너이자 연구자로서 지역적 관점의 다양한 업무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