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공간)」 2025년 3월호 (통권 688호)
바티 리을(2008)
DIALOGUE
김동진 홍익대학교 교수 × 이성용 실 건축사사무소 대표 × 조항만 서울대학교 교수
근린생활시설 : 건축
조항만(조): 2015년 장정제(숙명대학교 교수)는 김동진의 근생을 ‘길의 연장’으로 보았다(「SPACE」 574호 참고). 거리에 만연한 근생을 생각해보자. 입구로 들어가 계단실로 올라가 각 층에 바로 도달하고 끝이다. 그런데 김동진의 근생에는 연결이 있다. 공간의 연결, 시야의 연결, 길의 연결, 빛의 연결, 지하의 연결 같은 것이다. 그로 인해 더 많은 걸 가진 건축이 된다. 효율성만을 추구하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김동진은 이러한 연결을 최대 용적률 안에서 실현한다. 그게 김동진 근생의 특장점이다. 그가 만든 ‘비효율적’ 연결이 상업적인 도움으로 귀결된다.
김동진(김): 인사동 쌈지길을 처음 봤을 때 충격을 잊지 못한다. 언제부터 우리가 건물을 엘리베이터로 한 층 한 층 다녔나? 쌈지길이 ‘인사동에 길을 늘였다’는 평을 받듯이 작은 건물에서 그러한 시도를 조금씩 해보고 있는 거다. 자그마한 건물도 동네의 거주환경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조: 상업이 변천해왔다. 지금은 한국 근생의 황금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조건이 끝까지 간다는 보장이 없다. 인구가 소멸하는 한국 사회에서 미래에는 공동주택과 아파트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주거지를 보존하는 방향에서 주거 생활에 이바지하는 근생을 구상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 늘 근생이 문제였다. 젠트리피케이션이 대표적이다. 상업적으로 번화한 거리가 되면 부동산적 가치는 오를지 모르지만 사람은 살 수 없는 주거지가 된다. 처음 근생을 작업할 당시 근생은 주거지를 망가뜨린 주범이었다. 근생은 거리에서 점이 아닌 선으로 퍼져나가면서 지역을 시뻘건 상업 지대로 물들이고 주거지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렸다. 그런데 변화의 양상을 목도했다. 일본에 여행을 가면 문화가 구석구석 잘 뿌리내린 동네를 구경하지 않나? 맛있는 빵집, 카페, 디자인 숍이 있는 주거지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는 재미가 있다. 그런 게 우리나라에도 생기기 시작한 거다. 주거지에 문화를 일으키는 근생 공간들이 점처럼 들어가 활기를 주면 동네가 좋아지더라. 그걸 보며 희망을 얻었다. 넓게 분포된 주거지에 일상의 문화적 요소들이 선이 아닌 점으로 곳곳에 박혀 공생하는 것. 그렇게 주거지역을 내용이 꽉 찬 면으로 진화시키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다.
바티 리을(2008)
이성용(이): 중소 규모 기업의 문화가 풍부해지는 것도 근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대기업만이 있던 시대를 지나 작은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진 신생 기업이 많은 사회다. 각양각색의 문화를 가진 젊은 집단이 많아진 것이다. 과거에는 이러한 규모의 집단이 테헤란로 큰 빌딩의 한 층 공간을 점유했다면, 이제는 밖으로 나와 작은 땅에 4~5층의 소박한 건물을 짓고 1층은 임대를 주는 방식이 이미 만연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이 적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군집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소소하게 거리를 밝혀주며 거리에 색깔을 입히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김동진의 작업이 그러한 흐름에 있는 것 같다.
조: 강소기업과 근생의 시너지라고 말할 수 있겠다. 렘 콜하스의 『S, M, L, XL』에 빗대면 근생은 스몰 혹은 엑스스몰 건축이다. 책에 보면 호텔, 오디토리엄, 아파트, 아름다운 건축이 많지만 근생을 그런 건물과 같은 위치에 두고 볼 수 없다. 근생은 사업 가치를 우선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임대 건물이 지저분해지는 이유가 뭔가. 작은 건물에 더 작은 것들이 서로 아우성을 쳐서다. 그 대신 한 사업체가 건축을 하나씩 점유하면서 문화적 요소를 가진 프로그램으로 일대의 근린을 형성하고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는 관점으로 미래를 본다면 희망적이다.
김: 근생 설계는 주거지에 문화적 침술을 놓는 것과 같다. 작은 건축물 하나하나가 제각기의 방식으로 자리 잡으면서도, 개별적 건물이 아니라 도시 전반의 재생이나 활성화 흐름과 맞물려 공동 작업을 한다는 태도로 임한다. 건물이 가로를 어떻게 접하고 있는지, 땅의 경사가 어떤지, 일조가 어떻게 들어오는지 같은 특수한 조건들을 고민하면서 건축이 각자의 색깔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건축은 도시의 혈자리를 찾아 막힌 곳을 뚫어주고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된다. 그러므로 근생을 설계한다는 것은 땅이 가진 고유한 이야기와 건축주의 요구, 나의 생각, 그리고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생각을 하나씩 꺼내놓고 이야기하는 과정이다. 그 이야기가 자연스레 흘러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건축의 역할인 것 같다.
조: 김동진이 지금껏 건축으로 이야기를 심어왔다고 했는데, 이제 보니 ‘이야기’가 진화해 ‘대화’가 된 듯하다.
바티 리을(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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